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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백과

궁녀들의 은밀한 뒷 이야기 - 대식(對食) / 동성연애 / 세종의 며느리 이야기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 주제는 궁녀들의 은밀한 뒷 이야기에요!

 

 

 

 

 

 

 

다들 아시겠지만,

 

옛 궁녀들에겐 오로지 한 남자만 허용되었어요. 바로, 왕(王)이죠!

 

 

그렇지만 왕은 단 한명,

 

궁궐의 궁녀들은 무수히 많았을텐데......

 

 

 

그녀들의 1차원적인 욕구가 어떻게 발산되었을지 혹은 어떻게 해소를 시켰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함께 역사 속으로 떠나봅시다 고고고!

 

 

 

 

여러분은 대식(對食) 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면 '서로 대면하서 식사를 같이한다' 정도로 이해 할 수 있는데요.

 

우리의 역사 속 '대식'이란 단어는 식사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함께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뭐냐구요?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동성애'를 의미합니다.

 

 

 

사진이 좀 자극적인가요?ㅎㅎㅎ

 

 

 

어쨌든,

 

앞 서 언급했다 시피 궁녀들은 국왕의 여인이었지요. 공식적으로!

 

국왕의 그늘 아래, 그녀들은 성욕을 해소할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간혹 역사책을 보면 궐 밖의 선비들과 목숨을 걸고 사랑에 빠지는... 그런 러브스토리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하지만 궐 밖의 짝을 찾기보단 궐 내의 짝을 찾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거예요.

 

 

 

 

그래서 대식은 궐 내 궁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해요.

 

대식은 '방동무', '벗' 등으로도 불렸으며 엉덩이에 '붕(朋)'자를 문신하기도 했다네요.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사랑까지. 심지어는 성 역할까지도 구분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세종의 큰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인 봉씨의 이야기입니다.

 

문종의 첫번째 부인 김씨는 시기와 질투가 심하여 훗 날 국모로써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되어 폐위됩니다.

 

그 이후, 문종은 두 번째  부인 봉씨를 맞이하게 되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봉씨도 폐출되고 마는데 그 이유가 '대식'때문 입니다.

 

 

 

봉씨는 궐 내 여종이었던 '소쌍'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잠자리를 같이 한 다음 날이면 몸소 이부자리를 거두고, 심지어는 몰래 이불빨래를 하기도 했다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일들은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세종은 직접 소쌍을 불러 진위를 물었고 소쌍은 시인하였다고 세종실록에 전해집니다.

 

 

내가 중궁과 더불어 소쌍을 불러서 그 진상을 물으니, 소쌍이 말하기를 ‘지난해 동짓날에 빈께서 저를 내전으로 불렀는데, 다른 여종들은 모두 지게문 밖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같이 자기를 요구하므로 저는 이를 사양했으나, 빈께서 윽박지르시므로 마지못하여 옷을 한 반쯤 벗고 병풍 속에 들어갔더니, 빈께서 저의 나머지 옷을 다 빼앗고 강제로 들어와 눕게 하여, 남자의 교합하는 형상과 같이 서로 희롱했습니다’했다.  -『세종 실록』75, 18년 10월 무자조

 

 

 

 

 

어떠세요?

 

저는 이해가 가는 한 편, 조금 충격적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이런 면들을 보면 동성애 규제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이

 

약간 터무니없어 보이고,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성애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어쩌면 인간의 내면 깊숙한 본능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저의 생각? ㅎㅎ

 

 

 

 

 

하하 그럼 저는 또! 이 시점에서! 항상 그랬듯이! 급마무리를 짓도록할게요.

 

안뇽 =333